
신대원 수업중에 예배학 교수님이 내 주신 숙제입니다.
"나는 이렇게 예배드린다"제목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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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이 오면, 나는 조금 더 일찍 눈을 뜬다. 서두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날 하루만큼은, 내 안의 소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기 위해서다.
나는 조용히 자신에게 묻는다. "오늘, 나는 무엇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가?"
예배는 예배당 문을 들어서서 조용히 자리에 앉아 하나님께 고백한다.
그 주간에 내가 말했던 말들, 행동들, 생각들을 돌아보며
내가 어디서 하나님을 잊었는지를 살핀다.
화려하게 회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내 한 주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내 예배 준비의 전부다.
나는 찬양을 좋아한다. 그러나 많은 곡을 알지는 못한다.
찬양이 흐를 때 나는 가사 하나하나를 내 마음의 언어로 번역한다.
그 가사를 통해 아팠던 날, 길을 잃었던 날, 아무도 몰라준다 느꼈던 날에도 곁에 계셨던 그분을.
그 기억이 찬양을 진심으로 만든다. 그래서 내 찬양은 때로 눈물과 함께 나온다.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설교를 들을 때, 나는 내 마음을 건드리는 말씀을 접하고 내 자신의 입장에서 그 말씀이
나를 향한 것으로 받는다.
설교 중에 불편함이 느껴질 때, 나는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키고자 하시는 그 지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편안한 말씀만을 고르는 것은 하나님을 내 취향에 맞추려는 시도일 뿐이니까.
기도 시간이 되면, 나는 말을 줄이려 애쓴다.
한동안 나는 기도를 길게 잘 하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 앞에서 말문이 막혔을 때, 나는 비로소 진짜 기도를 만났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아 그냥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이 가까이 느껴졌다.
지금 나의 기도는 종종 짧다. 하지만 진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 이 시간을 허락하심을.”
”저는 연약하고 영과 육으로 힘이 드니 주님 나를 붙들어주소서. 흔들리지 않게.“
“제 모든 길을 주님의 뜻에 맡깁니다. 주의 은혜속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이 세 마디로 충분할 때가 많다.
예배당 문을 나서서는 방금 내가 만난 하나님을, 이제 내가 걸어갈 월요일의 세계 속으로 모시고 간다.
예배는 1시간의 종교 행사가 아니라, 한 주를 살아갈 방향을 다시 잡는 일이다.
그러니 예배당 안에서만 거룩하고, 세상에 나가서는 달라진다면 그 예배는 절반짜리일 뿐이다.
나는 예배 후에 내가 만난 이웃에게 조금 더 진솔하게 대하려 노력한다. 내가 들은 말씀
한 마디를 삶 속에서 실천해보려 한다. 실패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실패마저 다음 주일 예배의 출발점이 된다.
예배는 내게 의무가 아니다. 숨이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듯, 예배 없이 나는 방향을 잃는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내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린다.
예배는 그것을 매주 다시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내가 드린 예배가 완벽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분은 완벽한 찬양보다 진실한 마음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화려한 언어보다 솔직한 영혼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예배를 향해 나아간다. 깨끗한 척하지 않고, 다 준비된 척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 그것이 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예배이기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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