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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깨우는 말씀

은혜로 구원받고, 행함으로 증명되는 믿음

by 초보 준목 슬완빠(papa is ok) 2026.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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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장 1~10절)

 

 주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받는 것이며, 참된 믿음은 회개와 사랑의 행위로 열매를 맺습니다.

믿기만 하면 되는가, 행함도 있어야 하는가?

오늘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 하나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선한 행위는 왜 필요합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니 행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착하게 살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과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에베소서 2장 8~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분명히 성경은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2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한쪽에서는 행위로 구원받지 않는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었다고 합니다.

이 두 말씀은 서로 모순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두 말씀은 구원과 믿음의 서로 다른 측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무엇으로 구원받는가를 설명합니다.

야고보는 구원받는 믿음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를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삭개오의 이야기는 이 두 말씀을 함께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남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삭개오는 돈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삶이 변화된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이 질문을 중심으로 세 가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구원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로 시작됩니다

누가복음 19장 1~4절을 보면 삭개오가 등장합니다.

그는 세리장이었고 부자였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로마의 지배 아래 세금을 거두는 일을 했습니다.

많은 유대인에게 세리는 부정직하고 민족을 배신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삭개오는 돈이 있었지만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마음에는 깊은 외로움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았고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달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삭개오의 간절한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무 아래에 멈추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 5절입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이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삭개오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내가 너를 만나 주겠다.”

“네가 잘못 거둔 세금을 모두 돌려주면 네 집에 들어가겠다.”

“네가 착한 사람이 되면 구원해 주겠다.”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가 변화되기 전에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사랑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의로워졌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갚을 수 없는 빚

한 사람이 사업에 실패하여 큰 빚을 지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빚을 다 갚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 독촉을 받았고, 밤마다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찾아와 말했습니다.

“당신의 빚을 내가 대신 갚았습니다.”

그 사람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이미 다 갚았습니다. 당신이 빚을 갚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이 밀려올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준 사람의 사랑을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이 예화는 하나님의 구속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은혜의 한 측면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죄의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주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인간의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는 기도를 많이 하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실 거야.”

“나는 봉사를 많이 하지 못하니까 구원받을 자격이 없을 거야.”

“나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으니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을 거야.”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물론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죄를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를 깊이 깨달을수록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자라납니다.

삭개오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참된 믿음은 회개와 삶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누가복음 19장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삭개오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접은 단순한 환영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에 실제적인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누가복음 19장 8절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 말씀에는 삭개오의 회개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 그는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셋째, 재물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삭개오에게 재물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재물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은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여기서 야고보가 강조하는 것은 선행으로 구원을 사라는 뜻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삶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좋은 사과나무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기 때문에 사과나무가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를 맺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많이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가 되었기에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2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우리의 믿음에도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그 열매는 반드시 큰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에서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도 믿음의 열매입니다.

직장에서 정직하게 일하는 것도 믿음의 열매입니다.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용기 있게 사과하는 것도 믿음의 열매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것도 믿음의 열매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던 마음에서 돌이켜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믿음의 열매입니다.

 말보다 먼저 전해진 복음

한 교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직장에서는 성격이 거칠고 다른 사람을 쉽게 비난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예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정작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 주지 못했구나.”

그날 이후 그는 작은 일부터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동료에게 화를 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잘못한 일은 변명하지 않고 인정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동료가 있으면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어느 날 한 동료가 물었습니다.

“요즘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사람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그 교인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제가 믿는 예수님을 닮아 가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신앙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예화입니다.

 

이것이 행함 있는 믿음입니다.

입술의 고백이 삶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회개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의 변화는 단지 인간적인 결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며,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행함 있는 믿음은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셋째, 믿음과 행위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 9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삭개오가 재산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구원을 선언하신 것입니까?”

본문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먼저 삭개오를 찾아오셨고,

삭개오는 기쁨으로 예수님을 영접했으며, 그 결과 회개와 나눔의 결단이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개신교의 이신칭의 관점에서 삭개오의 나눔은 구원을 얻기 위한 대가가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한 믿음과 회개가 실제 삶에서 나타난 증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8절과 9절에서는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10절에서는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모순이 아닙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위해 살아갑니다.

다시 말해, 선한 행위는 구원의 뿌리가 아니라 구원의 열매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닙니다.

뿌리는 나무를 지탱하고 생명을 공급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가지에서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사랑과 순종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는 목적은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믿음이 좋은 사람인지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우리를 칭찬하게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는 꽃

어느 교회에 나이가 많은 권사님 한 분이 계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직분을 자랑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얼마나 봉사하는지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일마다 누구보다 일찍 교회에 오셨습니다.

예배당의 의자를 정리하고, 바닥에 떨어진 작은 휴지를 주웠습니다.

겨울에는 추운 예배당에 들어오는 성도들을 위해 난방 상태를 살폈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물었습니다.

“권사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권사님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몰라도 주님은 아시잖아요. 내가 받은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하는 거예요.”

이 예화는 조용한 헌신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아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 사람은 선행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헌신은 자신의 건강과 가정을 무너뜨릴 정도의 무리한 희생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지혜롭게 돌보면서 기쁨으로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순종도 귀하게 보십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박수를 받지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사랑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복음의 향기가 전해질 수 있습니다.

넷째,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삭개오 이야기의 결론이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보여 주는 중요한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의롭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만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상처받고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던 삭개오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구원의 은혜로 부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복음의 중심은 삭개오의 선행이 아니라, 삭개오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삭개오가 나무에 올라간 것도 중요합니다.

재산을 나누어 주겠다고 결단한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그날의 이야기는 전혀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열심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4절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증언합니다.

이 복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행위에 관한 논쟁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행위는 그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행위는 받은 은혜를 삶에서 나타내는 것입니다.

삭개오처럼 믿고, 삭개오처럼 변화됩시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구원은 우리의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시작됩니다.

둘째, 참된 믿음은 회개와 사랑의 행위로 열매를 맺습니다.

셋째, 선한 행위의 목적은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넷째, 모든 구원과 변화의 중심에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돈이 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사람을 사랑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삶으로 나아갔습니다.

그의 인생이 변화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내 믿음은 가족에게 사랑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내 믿음은 이웃에게 친절로 나타나고 있는가?”

“내 믿음은 일터에서 정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내 믿음은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우리에게 완전한 행위가 있어야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우리를 이전과 똑같은 삶에 안주하게 두지 않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작은 순종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믿음은 행함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도 삭개오를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그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십시오.

주님을 마음에 모시십시오.

그리고 받은 은혜를 사랑과 순종으로 나타내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가정과 교회와 이웃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드러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마치는 기도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삭개오의 이야기를 통해 구원의 은혜와 살아 있는 믿음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가 받은 은혜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

 

행위로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믿음이 있다는 말만 하면서 사랑과 순종을 외면하는 신앙에도 머물지 않게 하옵소서.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후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고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았던 것처럼,

우리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에서는 사랑을 실천하게 하시고, 일터에서는 정직하게 하시며,

교회에서는 겸손히 섬기게 하옵소서.

우리의 작은 선행을 통해 사람들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특별히 연약하여 넘어지는 성도들을 붙들어 주시고,

다시 주님께 돌아올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새겨 주시고,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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