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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교회사

미국의 독립전쟁 이후의 교회의 교파에 대하여

by 슬완빠(papa is ok) 2024.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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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로교회

1788년에 이르러 처음으로 총회가 필라델피아에서 창립되었으나,

1811년에 컴버랜드 장로교회가 분열되어 나가고,1838년에는

회중교회의 배경을 가진 뉴 헤븐 신학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총회는 신구 양파로 분열되었다.

구파의 중심은 프린스톤 신학교로 전통적인 칼빈주의를 고수하며,

신파는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를 중심으로 진보적 입장을 취하였다.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구파 교회는 노예문제로 북장로교회와

남장로교회로 양분되었으나, 남북전쟁 말기에 북부의 신구 양파는

1869년 드디어 재합동을 하게 되었다.

 

1929년 프린스톤 신학교의 메쳔교수가 신학적 좌경을 이유로

필라델피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우고 이어서 1938년에

정통장로교회가 분리되어 나가고, 다시 종말론과 기독교인의 자유

등의 이슈로 성경장로교회가 분리되어 나갔으며,

남장로교회에서도 신학적인 이유로 1964년에 개혁신학교가 미시시피의 잭슨에

세워지고, 그 후에 동조하는 목사들이 미국 장로교회를 따로 세웠다.

 

2. 개혁교회

미국 개혁교회는 화란교회를 모교회로 하고, 1628년에 뉴암스텔담에서

처음 시작하였고, 1737년에 이르러 프레링하이센 목사의 지도하에

미국노회 조직이 이루어 졌으며,1794년에 총회가 창립되었다.

 

처음엔 개혁차 프로테스틴트 화란교회로 시작하였으나, 1867년에

미국 개혁교회로 이름을 바꾸었고,1857년에 크리스천 개혁교회가

분리되어 그랜드 래피드에 칼빈대학과 신학교를 세워 보수적인

개혁교회운동을 전개하였다.

 

3. 감리교회

웨슬레는 토마스 코크를 목사로 안수하여 미국의 최초 감독으로 세웠고,

1784년 감리교회 최초의 장로로 홧트코트와 베시를 안수하였다.

이 해 볼티모어에서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감리교회가 교파로 조직되었다.

 

1845년 노예폐지 문제로 논쟁이 일어나 교파는 남북으로 양분되었고

1880년 성결교회가 감리교회의 영적 저조 현상에 불만을 품고

완전 성결을 표방하고 출범하여 25개의 교파로 나뉘었고, 그 중에서

가장 큰 교파인 나사렛교회가 1894년에 조직되었다.

 

4. 침례교회

침례교회는 미국에서 개신교중에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있는 데, 이는

신학교육을 받지 아니하여도 소명감과 기초 실력이 있으면 개교회에서

목사로 안수할 수 있는 이점을 살려 정규 신학출신만으로 부족한

교역자의 절대량을 쉽게 공급할 수 있는 점도 양적선장의 원인이 되었다.

 

1764년 로드아일랜드에 브라운 대학을 , 이어서 1819년 뉴욕에 해밀턴대학,

1820년에 메인에 워터빌대학을 세웠고 1825년에 메사츄세스에 뉴톤 신학교를

세워 목사를 양성하기 시작한 이래 전국적으로 많은 성서대학 및 신학교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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