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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교회사

한국 천주교와 이승훈의 관계

by 슬완빠(papa is ok) 2024.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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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천주교회의 시작

한국천주교회는 그 시작을 이 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는 사건으로
잡는다.

이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영세를 받았기 때문이다.

2. 이승훈은 ?

1756년 영조32년 강원도 평창의 양반가문에서 태어났고,

25세 때에 진사시험에 합격 후 평택지방의 현감을 지냈으며

정 약용의 매제가 되었고 이 벽과는 사돈의 관계였다.

 

이들 모두는 남인에 속한 학자들로 서학에 심취한 진보적 인사들이었다.

이승훈의 아버지 이동욱이 중국에 가는동지사겸 사은사인 황인점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는 데, 이 때를 이용하여서학을 연구하던

이들이 이승훈을 동지사 일행에 딸려 보내 중국으로부터 서학 서적을

구해오는 계획을 세운 바, 북경에 도착한 이승훈은 그 곳의 천주교 신부들과

교제를 가지면서 서양의 여러 학문을 접하고 천주교에 대한 교리 강습도 받았다

 

이승훈은 교리 강습을 받는 동안 크게 깨닫고 1784년 2월 공개적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북경의 북성당에서 예수회 소속 신부 그라몽으로부터

영세를 받게된다.(세례명 베드로)

 

3.이승훈의 배교

이승훈은 1789년 평택의 현감이 되었는 데, 그의 동생 치훈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1791년 척사문인 벽이문을 쓰고 배교를 선언하였다.

그는 1801년 2월 신유교난시에 배교한 상태에서 목슴을 잃었다

 

4. 이승훈 배교의 의미

순교자들과 함께 천주교도라는 이름으로죽으면서도 끝까지 참회하지 않고

배교자로 죽은 이승훈의 죽음은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영예를 짓밟은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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