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독교교회사

분파운동중 초교파운동에 대하여

by 슬완빠(papa is ok) 2025. 2. 3.
반응형

1. 운동의 시초

1927년 감리교 지도자였던 신 흥우가 YMCA 총무로 있으며,

기독교 연구회라는 반선교사,반보수를 표방하면서

조선 기독교의 성립과 교파의식 둔화를 목표로 하는 단체를 만들면서부터이다.

이듬해 그가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국제선교대회(IMC)에 한국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다녀와서 그 대회의 주제 가운데 하나였던 토착화신앙에

강한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한국적기독교의 설립을 부각하기 시작하였다.

 

2. 운동의 주장과 그 결말

1) 이 단체는 비밀결사의 성격을 띠었고 자기들만이 애국적이고 진보적이며

이상적인 교계 지도자라고 자처하면서 교회와 기독교 기관을 구원하기 위해

그 단원들을 각 교회와 기독교 기관에 침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2) 그러나 중심인물이던 신 흥우가 이혼한 박 인덕 여사와 스캔들을 일으켜

YMCA 총무직을 사퇴한 것을 계기로 이 운동은 사양의 길을 걷게 되었다.

 

3. 교훈

1) 이러한 움직임은 기성교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는 데, 이는 당시의

한국적 풍토에서 반보수,반선교사적 경향을 띤다고 하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였기 때문이었다.

2) 한국교회 중심이 지나치게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고 신앙의 폐쇄성이

개방을 향해 가는 시대에서 변화를 촉진하는 세력에 부딪치게 되어 있고,

선교사 중심의 교회가 선교사들의 보호권 내지는 주도권 밖으로 나와야 하는

문제가 조금 일찍 터져 나왔을 뿐이다.

3)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연합하여 한국교회의 고질적 문제점과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노력한 점은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