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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선택받음의 역설

by 초보 준목 슬완빠(papa is ok) 2026.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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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제기

현실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아랍인들을 탄압하고
이란과의 전쟁,예멘과의 전쟁 등을 일으키고 있는 데
이에 대한 신학적의미와 과연 이들이 선택받은 민족의 자격이 있는 지 ?

 

문제의 전제

위 문제는 정치적 평가와 성경신학적 평가를 구분해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이스라엘 정부와 군의 팔레스타인 정책,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 예멘 후티와의 충돌을 두고

비판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실제로 2026년에도 유엔은 가자지구의 민간인 피해와 인도주의적 위기, 서안지구의 정착민 폭력과

강제이주 문제를 계속 보고하고 있습니다.

2026년 7월 유엔 OCHA 보고서는 서안지구에서 정착민 공격으로 주택·차량·생계 기반이 파괴되고

가족들이 강제이주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국가가 잘못하고 있다 → 그러므로 유대인은 더 이상 선택받은 민족이 아니다”라고

바로 연결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상당히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성경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결론은 이것입니다.

선택받음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편들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택받았기 때문에 더 큰 책임을 요구받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1. 먼저 현재 현실을 정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여기서 유대인, 이스라엘 국민, 이스라엘 정부, 이스라엘군, 특정 정치세력을 하나로 묶으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인 = 하마스

이란인 = 이란 정부

예멘인 = 후티라고 동일시해서도 안 됩니다.

 

이스라엘 내부에도 정부의 전쟁정책과 정착촌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 가운데도 하마스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란 국민과 이란 정부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학적으로도 어떤 민족 전체를 하나님의 심판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2. 그런데 현실의 고통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현재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는 단순히 "이스라엘도 피해자다"라는 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합니다.

유엔은 2026년에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으로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주거지와 기반시설이 파괴되며, 식량·물·의료 접근이 심각하게 제한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서안지구에서도 유엔은 정착민 폭력, 주택 철거, 토지와 농지의 파괴, 강제이주가 지속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2026년 1월 이후 정착민 공격이 1,000건 이상 발생하고 2,2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와 관련해 이주한 것으로

보고된 바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이 현실을 보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우리가 판단하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면
성경의 선지자적 전통과 오히려 충돌할 가능성이 큽니다.

 

3.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훨씬 더 엄격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질문의 핵심입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선택받았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이 승인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가장 강력한 심판의 말씀을 전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이었습니다.


4. 아모스서를 보면 이것이 매우 선명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 아모스 5:22

그리고 더 중요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 아모스 5:24

이것은 엄청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는 하나님께 제사드린다.” 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너희 사회에 정의가 있는가?”라고 물으셨습니다.


5. 이사야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사야 1장에서 하나님은 예배와 제사를 많이 드리는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분노하십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열심히 드리면서

  • 약자를 억압하고
  • 고아를 돌보지 않고
  • 과부를 보호하지 않고
  • 사회적 불의를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 이사야 1:17

이것이 오늘 질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성경적 원칙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사실이 정의를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의를 요구합니다.

 

6. 오히려 선택받은 사람에게 더 큰 책임이 있습니다

아모스 3:2에 아주 무서운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이것을 잘못 읽으면

"이스라엘은 특별히 보호받는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히려

“너희를 특별히 알았기 때문에 너희에게 더 큰 책임을 묻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선택의 역설입니다.


7. 그러므로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표현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선택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인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신의 구원 역사와 언약의 도구로 특별히 부르셨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선택 ≠ 무조건적인 정치적 정당성입니다.

그리고

언약 ≠ 어떤 현대 국가의 모든 정책에 대한 신적 승인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구분입니다.


8. 그렇다면 현대 이스라엘 국가는 성경의 이스라엘과 같은가?

여기서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성경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과 1948년에 건국된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완전히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현대 이스라엘은 현대 국제정치 속에 존재하는 국민국가입니다.

민주적 제도도 있고, 정당정치도 있으며, 군대와 정부가 있고, 국제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반면 성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신정적·언약적 공동체라는 독특한 역사적 실체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선택받았으니 현대 이스라엘 정부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논리는
성경에서 자동으로 도출되지 않습니다.

 

9. 오히려 예수님은 이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바꾸셨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리고 예수님도 단순한 혈통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혈통 + 특권 만이 아니라

믿음 + 회개 +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10. 바울도 로마서 9~11장에서 이 문제를 깊게 다룹니다

여기서 중요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비판하면서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두 가지 극단을 모두 피해야 합니다.

극단 ①

“이스라엘은 선택받았으니까 무엇을 해도 하나님이 옳다고 하신다.”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극단 ②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완전히 폐기하셨다.”

이 역시 로마서 9~11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합니다.

성경의 메시지는 훨씬 복잡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책망하시면서도 자신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11.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지금 팔레스타인에게 행하는 일을 어떻게 신학적으로 볼 것인가?

여기서 상당히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부당한 살해, 강제이주, 집단적 고통, 주택과 생계 기반의 파괴, 정착민 폭력 등은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정당화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의 선지자적 기준으로 보면 정의와 약자 보호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비추어 엄격하게 평가해야 할 대상입니다.

유엔은 2026년에도 이러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보고하고 있으며,

서안지구에서는 정착민 폭력과 강제이주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마스나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민간인 공격과 인질 억류 역시 동일한 도덕적 기준으로 비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어느 한 민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2. 이란과의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중동의 이란 관련 전쟁은 단순히

"이스라엘이 악해서 전쟁을 일으켰다"라고만 설명하기에는
이란의 군사·핵·대리세력 문제와 지역 안보, 미국의 개입 등 복잡한 요소가 있습니다.

실제로 2026년 현재 이란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군사적 충돌이 이어지고 있으며,

호르무즈 해협까지 국제적인 안보 위기로 확대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안보 문제 자체를 부정해서도 안 됩니다.

이스라엘 국민에게도 생명과 안전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해서라면 모든 군사행동이 정당하다.”는 논리도 성경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정당한 자기방어와 무제한적인 보복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3. 예멘 문제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후티 세력은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홍해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대상으로 미사일·드론 공격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2026년 8월에도 후티의 공격이 홍해 지역과 사우디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러한 위협에 대응할 안보상의 필요가 있다는 점과,

예멘의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는 군사행동이 도덕적으로 정당한가라는 질문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성경적 정의는 “우리 편이냐 상대편이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옳으냐를 묻습니다.


14. 구약의 선지자들은 바로 이 점 때문에 이스라엘을 심판했습니다

이 부분이 질문하신 문제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특별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특별하니까 무엇을 해도 괜찮다.”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특별하기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더 엄격하게 묻겠다.”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미가 같은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왕과 지도자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면죄부가 아니었습니다.


15. 미가 6:8은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한 기준입니다

미가서에는 아주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기서 순서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의 , 인애 , 겸손입니다.

따라서 어떤 국가가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자유를 무시한다면,

기독교인은 오히려 미가서의 기준을 가지고 그 주장을 검증해야 합니다.


16.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민족의 자격을 잃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분리해야 합니다.

1) 정치적·윤리적 의미에서는

현대 이스라엘 정부의 특정 정책이 하나님의 정의에 어긋날 수 있으며, 강력하게 비판할 수 있습니다.

선택받았다는 주장은 그러한 정책에 면죄부가 되지 않습니다.

2) 구속사적·신학적 의미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전체가 이제 선택받은 자격을 상실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신중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를 여전히 말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죄를 비판하는 것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17.  ‘선택받음의 역설’

성경 전체를 보면

선택받음 → 특권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택받음 → 책임 → 실패 → 심판 → 회개 → 회복이라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이스라엘이 선택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더 엄격하게 정의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현대 이스라엘에게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한다면,

“너희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주장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를 더 엄격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고 말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8. 그리고 여기서 교회도 절대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 교회가

"저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있다."라고 말하는 순간,

교회 자신도 동일한 질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너희는 어떠한가?”

 

교회도 하나님께 선택받은 공동체라고 믿는다면,

- 약자를 보호하는가?

- 난민과 이주민을 어떻게 대하는가?

- 전쟁과 평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는가?

- 권력과 결탁하지 않는가?

- 돈과 성공을 우상화하지 않는가?

- 다른 민족을 혐오하지 않는가?

- 예배와 정의를 분리하지 않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19. 여기에서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가 다시 연결됩니다

앞에서 우리가 이야기했던 내용을 이제 현실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교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민족적 우월감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더 확장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이스라엘의 현실을 바라보는 기준은

친이스라엘/반이스라엘이라는 정치적 구분보다 훨씬 깊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그리스도의 사랑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20. 정리

현재 이스라엘의 행동을 바라볼 때 기독교인은 동시에 네 가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이스라엘 국민의 생존과 안전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국민을 대상으로 한 테러와 민간인 살해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둘째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생명과 존엄 역시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이유로 집단적 책임을 지울 수 없습니다.

셋째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준 아래 평가받아야 합니다.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주장은 면죄부가 아닙니다.

넷째

이스라엘의 현재 죄를 근거로 유대인 전체를 정죄해서도 안 됩니다.

국가·정부·군대의 행동과 유대인이라는 민족적·종교적 정체성을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21. 결국 성경이 말하는 ‘선택’은 ?

제가 지금까지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선택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이나 민족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특별히 부르시고 그만큼 더 큰 책임을 맡기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을 보면서

“선택받았으니 무엇을 해도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선택 개념을 특권주의로 왜곡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저렇게 행동하니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라고 단정하는 것도
인간이 하나님의 최종 심판자의 자리에 서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보다 훨씬 깊은 길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심판하신다.
그러나 그 백성을 완전히 포기하지도 않으신다.
그리고 그 백성에게 다시 정의와 자비와 회개를 요구하신다.

이것이 구약의 이스라엘을 관통하는 패턴이고,

오늘날 이스라엘을 바라볼 때도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신학적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아주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영토와 예루살렘, 서안지구, 가자지구에 대한 권리를

성경의 아브라함 언약이 실제로 보장하는가?”

이 문제를 다루려면

창세기의 ‘가나안 땅 약속’ →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 다윗 왕국 → 바벨론 포로 → 디아스포라

→ 1948년 이스라엘 건국 → 현대 팔레스타인 문제를 하나의 구속사적 흐름으로 놓고 봐야 합니다.

특히 이 부분에서 “성경의 땅 약속이 현대 국가 이스라엘의 영토 주권을 자동으로 보장하는가?”라는 질문이

기독교 내부에서도 가장 첨예하게 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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