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서론: 누구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재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사람을 평가하며 살아갑니다.
면접 자리에서는 이력서를 보고, 소개팅 자리에서는 사진과 직업을 보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봅니다.
"저 집사님은 말을 잘하시네," "저 집안은 자녀들이 잘됐다네,"
"저 분은 봉사를 잘하니 믿음이 좋으시겠지."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어느새 믿음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을 볼 때도 똑같은 잣대를 씁니다.
내가 보여줄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도 부족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위축되고,
보여줄 것이 많으면 그것이 곳 자격이라고 착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을 사무엘상 16장은 바로 그 잣대를 하나님께서 뒤집으시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 사울은 키가 크고 준수한, 누가 봐도 왕감인 사람이었습니다(삼상 9: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웠던 것을 후회하시고(삼상 15:35) 새 왕을 세우시려 합니다.
이번에는 무엇을 보시고 고르실까요? 오늘 말씀을 세 가지로 나눠서 살펴보겠습니다.
슬픔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다시 보내시는 하나님 (1~5절)
본문은 하나님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1절).
이 질문 안에 사무엘의 형편이 담겨 있습니다.
사무엘은 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는 일에 평생을 쏟았고, 그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위해 슬퍼했고(삼상 15:35),
하나님의 뜻이 정해진 뒤에도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한때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실망을 안기고 떠났을 때, 열심히 세운 일이 무너졌을 때,
끝났다고 생각한 관계 앞에서 우리는 오래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슬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슬픔 속에 우리를 그대로 두지도 않으십니다.
"네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1절).
슬퍼하는 사람 손에 기름 뿔을 들려 주시며 다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사무엘의 대답도 눈여겨보십시오.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2절).
사무엘은 두렵다고 솔직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두려움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대신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다 하고"라고 구체적인 길을 일러 주십니다(2절).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종에게 용기를 내라고 다그치기보다 한 걸음 내디딜 길을 보여 주십니다.
사무엘이 순종하여 베들레헴에 이르자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맞이하고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라고 묻습니다(4절).
사무엘은 "평강을 위함이라"고 답하고 이새와 그 아들들을 제사에 청합니다(5절).
사무엘이 슬픔의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하자 하나님의 다음 일이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슬픔을 다 정리한 뒤에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일어서는 걸음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어떤 슬픔 앞에 서 계십니까? 그 슬픔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손에 쥐여 주시는 기름 뿔을 받으십시오. 아직 쓰임받을 일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6~10절)
제사 자리에 이새의 아들들이 한 명씩 들어옵니다.
장남 엘리압이 들어오자 사무엘은 한눈에 마음이 끌립니다.
"여호와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진실로 그의 기름 부으실 자로다"(6절).
여기서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평생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온 선지자 사무엘마저 외모에 이끌립니다.
눈에 보이는 풍채가 왕의 자격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사울의 일로 그렇게 큰 아픔을 겪고도 사무엘은 같은 실수 앞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일은
믿음이 좋다고 저절로 없어지는 습관이 아님을 이 장면이 보여 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7절).
하나님은 엘리압을 "이미 버렸다"고 하십니다.
엘리압이 훗날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는 사무엘상 17장 28절에 나옵니다.
골리앗 앞에서 싸우겠다는 동생 다윗을 향해 화를 내며 그의 교만과 마음의 악함을 탓합니다.
겉모습이 번듯한 사람이 반드시 마음까지 하나님을 향해 있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심"이라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가를 보십니다.
실력과 직분, 이력과 평판은 사람 앞에서는 힘이 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결정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이새는 아들을 한 명씩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합니다.
아비나답이 지나가고 삼마가 지나갑니다. 일곱 아들이 모두 지나갔지만 사무엘의 대답은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10절).
이 말씀은 두 방향으로 우리를 향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의 눈을 구해야 합니다.
말이 서툴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 속에 하나님이 마음을 두신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번듯해 보이는 사람이 무너질 때에도 우리는 너무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자신을 대할 때에도 하나님의 눈을 구해야 합니다.
내세울 것이 없다고 주눅 들지 마십시오.
반대로 내세울 것이 많다고 자신을 믿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가 정직하게 내놓는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값진 예물입니다.
아무도 부르지 않던 자리에서 찾으시는 하나님 (11~13절)
일곱 아들이 모두 지나간 뒤 사무엘이 묻습니다.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11절).
이새의 대답이 마음에 걸립니다.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양을 지키나이다."
이새의 계획표에는 다윗이 없었습니다.
제사 자리에 청해야 할 사람의 명단에 막내는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도, 형들에게도 다윗은 들판에 두어도 되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표에는 처음부터 다윗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말합니다.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 말씀에는 기름 부음의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 오기 전에는 제사 자리조차 시작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려는 사람을 아무도 부르지 않았던 자리에서, 하나님은 그를 기다리십니다.
다윗이 들어오자 본문은 그의 모습을 한 줄로 전합니다.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12절).
하나님이 외모를 싫어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도 지으신 분이십니다. 다만 외모가 택함의 기준이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양을 지키던 시간 속에서 다윗의 마음을 이미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이 기름 뿔을 들어 형제들 가운데서 그에게 붓자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13절)고 합니다.
기름 부음은 의식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시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곧바로 다윗은 다시 양을 치는 자리로 돌아갑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자리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세우시는 방식은 그렇게 조용하고 오래 걸립니다.
다윗이 완벽해서 택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훗날 다윗은 큰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 앞에서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노라"(삼하 12:13)고 고백하며 돌아섰고,
시편 51편에서는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시 51:17)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신 중심은 흠 없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은 그를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부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께 이렇게 들리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자리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도 나를 잊으신 것이 아닙니다.
들판에서 맡은 양을 지키던 시간은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명단에서 빠졌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그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결론과 적용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슬픔에 머물러 있는 사람에게 기름 뿔을 들려 다시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넘어 중심을 보시고 사람을 고르십니다.
그리고 아무도 부르지 않던 들판의 사람을 찾아가 쓰십니다.
이 말씀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1. 내 슬픔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슬퍼하는 것이 믿음 없는 일이 아니지만,
슬픔에 오래 머물기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다음 걸음이 가려집니다.
이번 주에 하나님께 솔직히 아뢰고, 신뢰할 만한 사람과 그 슬픔을 나눠 보십시오.
2.만나는 사람을 한 번 더 보십시오.
무엇을 가졌는지만 보지 말고,
하나님이 그 사람의 마음에 하고 계시는 일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남이 보는 모습과 다른 하나님의 시선을 구하십시오.
3. 맡겨진 자리를 지키십시오.
다윗은 기름 부음 이후에도 양을 치는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집안일, 직장의 일, 섬기는 일을 오늘도 정직하게 감당하십시오.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를 다듬으시고 쓰십니다.
사울은 외모로 세워진 왕이었고, 다윗은 중심으로 부름받은 왕이었습니다.
이 차이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르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이 베들레헴에서
나신 길로 이어졌습니다.
그분은 화려한 위엄이 아니라 마구간에 남으셨지만, 우리의 마음을 어느 누구보다
깊이 보시고 사랑하시는 주님입니다. 그분 앞에 우리의 마음을 열어 드립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슬픔에 머문 사람을 다시 보내시고,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고 사람을 세우시며,
아무도 부르지 않던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 기름을 부으십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희는 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재고 자신을 재어 왔습니다.
저희의 눈을 고쳐 주시고, 주님의 시선으로 이웃을 보게 해 주세요.
슬픔에 머물러 있는 이에게 기름 뿔을 들려 주시고,
아무도 부르지 않는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희생으로 지키는 이들을 격려해 주세요.
저희의 중심이 주님께 정직하게 돌아서게 하시고,
주님의 영이 저희 삶을 다스려 주시기를 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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