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누가복음 19장 5절)
주님은 우리를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우리 인생에는 잊을 수 없는 만남이 있습니다.
어떤 만남은 잠시의 기쁨을 주지만, 어떤 만남은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놀라운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과 삭개오의 만남입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이었으며 부자였습니다.
그는 당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돈이 있었고, 지위가 있었으며,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을 받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했지만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까지 소유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달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무 아래에 이르셨을 때 그냥 지나가지 않으셨습니다.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위를 쳐다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 말씀은 단순히 삭개오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도 주님은 죄인을 찾아오시고, 이름을 부르시며, 은혜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주님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멀리서라도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가 예수님을 바라보기 전에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바라보셨습니다.
이 장면에는 복음의 놀라운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구원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올라가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인을 찾아오시는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에 올라갔지만,
예수님은 삭개오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자리에서 멈추셨습니다.
예수님은 우연히 그 나무 아래를 지나가신 것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의 결론인 누가복음 19장 1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죄인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을 다시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기도를 많이 해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실 것이다."
"내가 신앙생활을 잘해야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실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더 깊은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의로워졌기 때문에 주님이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주님께서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도 전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아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기 전에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찾고 계셨습니다.
삭개오를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께 자신의 집에 와 달라고 먼저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혹시 지금 자신의 형편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계십니까?
과거의 실패 때문에, 해결되지 않은 죄의 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할 상처 때문에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완전한 사람만 찾아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시는 구주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주님의 사랑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실패가 주님의 은혜보다 클 수 없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가 너를 찾아왔다."
이 은혜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무 위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이 한마디가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군중 속에 숨어 있는 한 사람을 주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단순히 "세리장"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부자야!"라고 부르지도 않으셨습니다.
"죄인아!"라고 부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세상은 사람을 직업과 재산, 학력과 지위로 평가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이 많다는 이유로 존중받고,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이 적다는 이유로 무시당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아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아십니다.
우리의 눈물을 아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음의 깊은 탄식까지 아십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 말씀은 본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은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받은 성도들에게도 큰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으로 보았습니다.
그의 과거와 직업을 보았습니다.
그의 잘못과 허물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찾아야 할 한 영혼으로 보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시선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물론 주님의 사랑이 죄를 가볍게 여기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를 용납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실제로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부당하게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그의 삶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신다면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보다
우리가 그분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서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평가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음성 앞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주님의 부르심에는 오늘 응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속히"와 "오늘"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언젠가 내려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시간이 나면 내려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속히 내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구원 사역이 얼마나 분명하고 긴급한지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잠시 구경하시는 데서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머무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여기서 "유하여야 하겠다"는 말씀은 단순한 숙박 계획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반드시 이루셔야 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연결되는 표현입니다.
주님께서 삭개오를 찾아가시는 일은 구원의 사명을 이루시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삭개오는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누가복음 19장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삭개오는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급히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 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계속 미루는 것입니다.
"나중에 기도하겠습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예배를 회복하겠습니다."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하나님께 헌신하겠습니다."
"언젠가 그 사람을 용서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을 보장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올 때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15절은 말씀합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삭개오가 나무 위에 계속 머물렀다면 예수님을 바라볼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시는 기쁨은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무 위에 머무르는 것은 멀리서 바라보는 자리였습니다.
나무에서 내려오는 것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리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내려와야 할 자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교만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자기 의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삭개오가 내려온 행동 자체가 구원의 공로가 된 것은 아닙니다.
먼저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가 있었고, 삭개오는 그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합니다.
오늘이 은혜의 날입니다.
오늘이 말씀에 응답할 날입니다.
오늘이 주님 앞에 마음을 열어야 할 날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기쁨으로 응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주님이 찾아오시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삭개오의 이야기는 단순히 키 작은 사람이 나무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이야기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재물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구원의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는 삭개오의 마음뿐 아니라 그의 행동까지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았고,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9장 9절에서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에게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죄인이 은혜를 받습니다.
잃어버린 자가 구원을 얻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삶으로 변화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기억합시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세 가지 복음의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첫째, 주님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십니다.
둘째,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부르십니다.
셋째,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오늘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열기를 원합니다.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영접하십시오.
주님의 부르심 앞에 겸손히 내려오십시오.
그리고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변화된 삶을 살아가십시오.
삭개오의 집에 구원의 기쁨이 임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 가정과 교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기쁨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삭개오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 전에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죄 가운데 있던 우리를 찾아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주님, 우리가 세상의 시선과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하옵소서.
교만과 불순종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시고, 말씀에 믿음으로 응답하게 하옵소서.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후 삶의 변화로 은혜를 나타냈던 것처럼,
우리도 가정과 교회와 세상 속에서 사랑과 정직과 나눔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며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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