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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깨우는 말씀

너희를 위하여 주신 몸, 너희를 위하여 흘리신 피

by 초보 준목 슬완빠(papa is ok) 2026.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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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사랑과 새 언약의 은혜

본문: 누가복음 22장 19–20절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주님께서 마지막 밤에 남기신 말씀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지면 가장 소중한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자신이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말을 생각합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식사를 나눈다면

그 자리에서 나누는 말은 평범한 식사 자리의 말과는 다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나누신 마지막 유월절 식사 가운데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계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반할 것도 아셨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도 아셨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움 가운데 흔들릴 것도 아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자신의 억울함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배반할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그리고 잔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너희를 위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고 피를 흘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새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세 가지 은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피는 새 언약을 세우는 피입니다.

셋째, 우리는 성찬을 통해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며 은혜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십자가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1.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19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예수님께서는 떡을 가져 감사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떡을 단순한 음식으로만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 말씀은 곧 십자가에서 이루어질 예수님의 희생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죄인들을 위한 희생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자발적으로 내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8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순한 비극적인 죽음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사건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죽음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대속의 죽음입니다.

2.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대신하신 죽음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여기에서도 중요한 표현이 반복됩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신 것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이것이 대속입니다.

 

대속이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값을 치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아야 할 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의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아지셨으며,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 익숙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십자가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말씀을 너무 자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분이 죽음을 담당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의 형벌을 짊어지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의로워진 다음에 주님께서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공로를 쌓은 다음에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주님께서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3.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을 무너뜨립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자신의 의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구원은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은

우리가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구원받았으며

이것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므로 누구도 자랑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해서 구원의 공로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많은 봉사를 했다고 해서 죄가 용서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헌금과 기도와 선행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희생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혹시 영적인 교만이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보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

"나는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다."

이러한 생각이 우리 안에 있다면 다시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 말씀 앞에서 감사와 겸손으로 응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피는 새 언약을 세우는 피입니다

1.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20절을 보겠습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잔을 들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새 언약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언약'입니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맺으시는 거룩한 관계와 약속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해 장차 새 언약을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 31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실 날이 이를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새 언약의 중요한 특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법을 백성의 마음에 기록하시고,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시며,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그 약속의 성취를 선언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예수님의 피는 새 언약을 세우는 희생의 피입니다.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확증되었습니다

출애굽기 24장을 보면

모세가 언약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을 가리키는 그림자였습니다.

히브리서 9장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음을 설명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단번에 이루어진 완전한 속죄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4절은

그리스도께서 한 번의 제사로 거룩하게 되는 자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의 제사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발견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장차 오실 구속자를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을 실제로 내어주심으로 구속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속하기 위해 반복적인 희생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 예수님께서 다시 희생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신 희생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유익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주의 성찬 이해의 중요한 핵심입니다.

새 언약의 백성은 은혜로 살아갑니다

새 언약은 단순히 종교적인 제도가 바뀌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백성에게

죄 사함과 새로운 생명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의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30–35문은 하나님의 은혜언약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죄와 비참의 상태에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시며 성령의 은혜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새 언약의 은혜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려는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백성은 과거와 똑같은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죄와 싸우며 거룩함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았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져야 합니다.

미움을 품고 살던 사람은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던 사람은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의 재물과 명예만을 추구하던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백성에게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새 언약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며 은혜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1.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예수님께서는 떡을 주시면서 말씀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여기서 '기념하라'는 말씀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머릿속에 떠올리라는 뜻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명하신 성찬을 행하면서 그분의 구속 사역을 기억하고 선포하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6절은

우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과거를 기억하는 동시에 현재의 믿음을 굳게 하고 장차 오실 주님을 기다리게 하는 예식입니다.

 

성찬에는 세 가지 시간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과거에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을 기억합니다.

둘째, 현재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은혜를 누립니다.

셋째, 미래에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합니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이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교회를 돌보시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장차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2. 성찬은 단순한 상징 이상의 은혜의 방편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 성찬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칼빈은 성찬을 단순한 기념 의식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신자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참된 영적 교제를 누린다고 가르쳤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70문 역시

합당하게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주는 영적인 유익에 참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떡과 포도주가 물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자동으로 구원의 은혜를 받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성찬의 효력은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복 주심에 달려 있습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고 믿음의 확신을 굳게 합니다.

 

성찬은 형식적인 종교 행사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주신 귀한 은혜의 방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조건 두려워하며 피해서도 안 됩니다.

성찬은 완전한 사람만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는 신자에게 주어진 자리입니다.

3.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의 자세

고린도전서 11장 28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성찬에 참여할 때 우리는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살펴야 합니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성찬의 중심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해야 합니다.

둘째,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죄를 숨기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셋째,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하나 됨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정죄하는 태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넷째,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몸을 내어주시고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큰 감사의 이유입니다.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저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은혜를 믿습니다.

제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러한 믿음과 회개의 자세로 성찬에 참여할 때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하신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이 두 말씀에는 복음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희생을 통해 새 언약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선물이 있습니다.

값비싼 선물도 있고, 오래 기억에 남는 선물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몸은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몸입니다.

그분의 피는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피입니다.

그분의 죽음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대속의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찬의 떡을 볼 때마다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찬의 잔을 볼 때마다 새 언약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배당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갈 때에도 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다면,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다면, 우리도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으로 끝나지 마십시오.

그 은혜를 믿음으로 붙드십시오.

그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1장 26절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으심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게 하십시오.

우리의 가정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게 하십시오.

우리의 삶이 새 언약의 은혜를 증거하게 하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교회 위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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