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본문: 역대상 21장 1–30절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입니까?
우리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일까요?
실패했을 때일까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일까요?
건강을 잃었을 때일까요?
물론 이러한 순간들은 우리에게 큰 고통과 어려움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생각해 보면 실패보다 더 위험한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성공했을 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실패했을 때는 하나님을 찾기 쉽지만,
성공했을 때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는 기도하지만, 형편이 좋아지면 기도를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부족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만, 풍족해지면 자신의 능력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는 하나님께 매달리지만,
모든 일이 잘될 때는 하나님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더 의지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이 바로 그러한 위험 앞에 서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셨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고,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21장에는
다윗의 영광스러운 승리가 아니라 그의 부끄러운 실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라고 명령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백성의 수를 조사하는 것이 왜 죄가 되겠습니까?
문제는 숫자를 세는 행위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 행동에 담긴 다윗의 마음과 하나님 앞에서의 불순종이 문제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와 능력을 의지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군사력과 나라의 규모를 의지하려는 유혹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 큰 재앙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장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회개가 나타납니다.
긍휼이 나타납니다.
제단이 세워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역대상 21장을 통해 세 가지 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때 인간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게 됩니다.
둘째, 참된 회개는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자리에서 희생제사를 통해 은혜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욱 깊이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자신의 힘을 의지하게 됩니다
1. 다윗의 마음에 찾아온 시험
역대상 21장 1절입니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본문은 다윗이 인구조사를 실시하게 된 배경을 설명합니다.
사탄이 다윗을 충동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시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다윗도 시험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서 시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목회자도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장로와 집사도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평생 교회를 섬겨 온 성도도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 중 하나는
자신은 절대로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2. 인구조사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다윗의 불순종입니다
다윗은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수를 세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요압은 다윗의 명령에 반대했습니다.
역대상 21장 3절에서
요압은 왜 왕이 이러한 일을 요구하여 이스라엘에 죄가 있게 하려 하느냐고 말합니다.
요압은 평소 다윗의 명령에 충실했던 군대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왕의 명령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인구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모든 인구조사가 죄인 것은 아닙니다.
민수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인구를 계수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역대상 21장의 죄를 단순히 숫자를 세었다는 행위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다윗의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 행동에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운 불순종이 있었습니다.
또한 군사력을 확인하고 자신의 나라를 자랑하려는 교만과 자기 의존의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숫자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재물이 죄는 아닙니다.
능력이 죄는 아닙니다.
성공이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숫자를 더 의지하면 그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신뢰하면 재물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능력을 더 의지하면 그 능력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수가 많아지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교회 재정이 넉넉해지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좋은 건물을 갖게 되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교회의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참된 능력은 사람의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참된 능력은 재정의 규모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참된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에 있습니다.
3. 하나님보다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예레미야 9장 23–24절에서
하나님은 지혜로운 자가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용사가 자신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며, 부자가 자신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자랑할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생명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건강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재능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재물과 기회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왔다."
"내 능력으로 이 일을 이루었다."
"내가 없었으면 이 일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고와 책임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궁극적으로 자신의 공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8문은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면서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그 행동을 보존하고 다스리신다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공할수록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많이 소유할수록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설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통장에 있는 돈입니까?
자신의 경험입니까?
건강입니까?
인간관계입니까?
아니면 살아 계신 하나님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 참된 회개는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1.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역대상 21장 7절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악하게 여기시고 이스라엘을 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제야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8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윗의 태도입니다.
다윗은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요압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자신을 충동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내가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것이 회개의 출발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잘못했을 때 변명하려고 합니다.
환경을 탓합니다.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참된 회개는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께 정결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그가 한 번도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는 심각한 죄를 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가 드러났을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했습니다.
우리도 죄를 범했을 때 변명보다 회개를 선택해야 합니다.
2.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통해
다윗에게 세 가지 징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셨습니다.
기근과 전쟁의 패배, 전염병이라는 선택이 주어졌습니다.
다윗은 큰 고통 가운데 놓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역대상 21장 1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이 말씀은 오늘 설교의 중요한 중심 구절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정당하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았습니다.
"여호와의 긍휼이 심히 크시니."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죄를 미워하십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에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출애굽기 34장 6절은
하나님께서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많은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동시에 회개하는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에게서 도망쳐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죄가 크다고 해서 하나님의 긍휼이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실패가 깊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를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긍휼이 크기 때문에 더욱 진실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3. 참된 회개는 다른 사람의 고통까지 돌아보게 합니다
역대상 21장 17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이 백성의 수를 세라고 명령한 죄를 범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탄식하며
자신과 자신의 집을 치시고 백성에게는 재앙을 내리지 말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윗의 회개가 더욱 깊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죄로 인해 고통받는 백성들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잘못이 다른 사람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변화입니다.
참된 회개는 단순히 마음이 괴로운 감정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 죄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을 돌아보며,
가능한 책임을 감당하려는 태도를 포함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잘못했을 때 가족들이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많은 성도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책임 있는 사람이 잘못 판단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임이 큰 사람일수록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잘못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76문은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설명하면서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며 하나님께 돌아와 새로운 순종을 결심하고 힘쓰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참된 회개는 말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회개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자리에서 은혜의 제단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1. 하나님께서 재앙을 멈추셨습니다
역대상 21장 15절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멸하려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재앙이 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재앙을 보시고
뜻을 돌이키시며 멸하는 천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심판을 명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심판을 멈추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 가운데서도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긍휼을 구했을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재앙이 멈추는 장소입니다.
바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통해 다윗에게 그곳에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심판이 멈춘 자리에서 제단을 쌓게 하셨습니다.
죽음의 위협이 있던 자리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놀라운 전환입니다.
2. 다윗은 값을 지불하고 제단을 세웠습니다
다윗은 오르난에게 타작마당을 사려고 했습니다.
오르난은 왕에게 그 땅과 제사에 필요한 것을 기꺼이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역대상 21장 2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결단코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빼앗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다윗은 값없이 제물을 드리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소유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는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타작마당을 구입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배자의 진지한 태도를 발견합니다.
예배는 형식적으로 드리는 종교 행사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만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이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를 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죄 사함은 인간의 공로로 얻을 수 없습니다.
다윗이 값을 지불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예배하려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단순히 헌금을 많이 해야 복을 받는다는 뜻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돈의 액수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습관적으로 예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형식적으로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을 들으면서도 마음은 세상에 빼앗겨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예배가 진실한 믿음과 감사의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제단 위에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역대상 21장 26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그곳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윗은 죄를 범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심판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자리에서 제사를 받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2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천사에게 명령하여 칼을 칼집에 꽂게 하셨습니다.
심판의 칼이 거두어졌습니다.
재앙이 멈추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났습니다.
이 제단은 장차 이루어질 더 크고 완전한 구속을 바라보게 합니다.
역대하 3장 1절을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장소가 바로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있던 모리아산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상 21장의 제단이 세워진 장소는 훗날 성전이 세워지는 장소와 연결됩니다.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멈춘 장소에 제단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에 훗날 성전이 건축되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제사를 통해 죄 사함과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르치시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와 성전은 그 자체로 최종적인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했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역대상 21장의 제단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짐승의 피가 흘려졌습니다.
제사장은 계속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단번에 희생제물로 드리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4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완전한 속죄의 제사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십자가에서 드러났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로마서 3장 26절은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이심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무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심판을 가볍게 여기시는 분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44문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서 자신을 단번에 흠 없는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고,
자기 백성을 위해 계속 중보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노력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다윗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중보자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결론: 교만에서 회개로, 심판에서 은혜로
오늘 우리는 역대상 21장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지만 교만의 시험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자신의 군사력을 확인하려 했고,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 큰 재앙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가운데서도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제단을 쌓게 하셨고, 그 제사에 응답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 하나님보다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공할수록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많이 소유할수록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설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둘째, 죄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죄를 인정하고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다윗의 제단은 장차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을 바라보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할 교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회개해야 할 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자신의 힘을 내려놓으십시오.
자신의 의를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오직 성령의 역사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고백을 다시 기억합시다.
"여호와의 긍휼이 심히 크시니."
하나님의 긍휼은 크십니다.
그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교만에서 회개로 돌아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역대상 21장의 말씀을 통해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의 공의, 그리고 놀라운 긍휼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다윗이 자신의 군사력을 의지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능력과 재물과 경험을 더 의지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성공할수록 더욱 겸손하게 하옵소서.
죄를 깨달았을 때 변명하거나 숨기지 않게 하시고,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회개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아픔을 돌아보고 책임 있게 행동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게 하시고,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게 하옵소서.
우리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하게 하시고, 날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유일한 구주와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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