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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깨우는 말씀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

by 초보 준목 슬완빠(papa is ok) 2026.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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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누가복음 22:27)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높은 자리에 올라가라고 말합니다.

더 높은 지위를 얻으라고 합니다.

더 많은 재물을 소유하라고 합니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래야 성공한 인생이고, 그래야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보다 앞서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애씁니다.

때로는 자신의 능력과 업적을 인정받기 위해 경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세상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도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누가복음 22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또한 잔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고 피를 흘리실 것을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제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누가복음 22장 24절입니다.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높은 자리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주실 준비를 하고 계셨는데 제자들은 누가 더 큰 사람인지를 다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낮아지시는 길을 걸어가고 계셨는데 제자들은 높아지는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교회 안에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자신의 수고를 알아주기를 바라며,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서기를 원합니다.

 

바로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세상의 위대함과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은 다릅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친히 섬기는 자가 되셨습니다.

셋째,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첫째, 세상의 위대함과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은 다릅니다

1. 제자들은 누가 더 큰 사람인지 다투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24절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제자들은 예수님과 오랫동안 함께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시며,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세상적인 가치관이 남아 있었습니다.

 

누가 더 큰 사람인가?

누가 더 중요한 사람인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깊은지를 발견합니다.

인간은 단순히 잘못된 행동을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한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뱀은 인간에게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유혹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보다 스스로 높아지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죄의 본질에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이 있습니다.

오늘 제자들의 다툼에서도 그러한 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 어떤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습니까?

직분을 맡았을 때 어떤 마음으로 감당하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칭찬받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습니까?

혹시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중요한 일을 맡았다고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 앞에서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섬김의 자리에서도 교만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봉사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헌신하면서도 인정받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겸손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겉으로 섬기는 행동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2. 예수님은 세상의 권력 방식을 따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25절에서 예수님은 세상의 임금들이 사람들을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는 모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얼마나 분명한 말씀입니까?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세상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을 위대함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러한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이 참된 위대함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참된 위대함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교회 안에서 모든 직분과 권위를 없애라는 뜻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목회자와 장로와 집사 등 각기 다른 직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직분은 사람 위에 군림하기 위한 특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고 섬기기 위한 책임입니다.

목회자의 권위는 성도를 지배하기 위한 권위가 아닙니다.

장로의 직분은 존경만 받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집사의 직분도 이름과 명예를 얻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모든 직분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3절은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교회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장 높은 직분을 가진 사람입니까?

가장 많은 헌금을 하는 사람입니까?

가장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다릅니다.

주님의 사랑을 따라 겸손하게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3. 참된 위대함은 자신을 높이는 데 있지 않습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세상은 자신을 드러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자신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사람의 유익도 돌아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이 말씀을 적용해 보십시오.

남편이 아내를 섬기고,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며 서로의 필요를 돌아보는 가정이 복된 가정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생명으로 사랑하며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수고를 기억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높아지려고 경쟁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낮아져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친히 섬기는 자가 되셨습니다

1.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이제 오늘 본문 27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당시 식사 자리에서 음식을 대접받는 사람과 음식을 시중드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는 일반적으로 달랐습니다.

음식을 대접받는 사람이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사회적 관습을 인정하는 질문을 하십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런데 곧바로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그러나'입니다.

 

세상의 질서는 그렇지만 예수님은 다르게 행동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천사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어떤 자리에 서셨습니까?

섬기는 자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높임받아야 할 분이 낮아지셨습니다.

섬김받아야 할 분이 섬기셨습니다.

영광의 주님이 종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겸손입니다.

2. 예수님의 섬김은 성육신에서 시작하여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자신을 위한 특권으로 붙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 죽음은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단순히 겸손한 삶의 모범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을 단지 훌륭한 도덕적 스승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복음의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단순한 친절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대속의 사랑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은 말씀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죄인이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섬김은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46–50문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하시고, 율법 아래 복종하시며,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장사되셨습니다.

이 모든 낮아지심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을 때 단순히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겸손하셨으니 우리도 겸손해야겠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교훈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깨달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종의 자리까지 낮아지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헌신하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3. 주님의 섬김은 자격 없는 죄인을 향한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섬김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로마서 3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의로웠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섬기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공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30문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를 죄와 비참의 상태에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은혜언약으로 구원하신다고 가르칩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섬김을 깊이 깨달을수록 교만할 수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이렇게 고백할 뿐입니다.

"주님, 저 같은 죄인을 위해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를 지셨으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섬김을 통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섬김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감사함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잊지 마십시오.

은혜가 먼저입니다.

구원이 먼저입니다.

그 다음에 감사와 순종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셋째,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예수님의 섬김은 우리의 삶의 기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단순한 감동을 주기 위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삶이 달라지기를 원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2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높이기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다른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섬김받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갈라디아서 5장 13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의 섬김은 자신의 의지와 결심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여전히 교만과 이기심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75문은

성화를 설명하면서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하시고

죄에 대하여 죽으며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참된 섬김은 성령께서 변화시키신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저를 섬기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주님, 제 안에 있는 교만을 깨뜨려 주옵소서."

"주님, 사람의 칭찬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게 하옵소서."

2. 참된 섬김은 작은 일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섬김이라고 하면 특별하고 큰 일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봉사하는 일이나 큰 재정을 헌신하는 일을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한 섬김도 귀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섬김은 반드시 큰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일에도 참된 섬김이 있습니다.

예배당에 먼저 와서 자리를 정돈하는 손길이 있습니다.

몸이 불편한 성도를 위해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외로운 성도에게 따뜻한 전화 한 통을 건네는 사람이 있습니다.

힘든 일을 겪는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피곤한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서로의 수고를 알아주는 일도 귀한 섬김입니다.

이러한 작은 행동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일을 자신에게 한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섬김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박수를 받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섬김이 자신의 건강과 책임을 무조건 희생하거나

다른 사람의 부당한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섬김은 진리와 사랑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때로는 잘못된 일을 거절하고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섬김입니다.

3. 교회는 서로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명합니다.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습니다.

눈이 있고 귀가 있습니다.

손과 발이 있습니다.

각 지체는 서로 다른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 지체도 필요하지 않은 지체는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봉사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연약한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충성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가는 공동체입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건물이 큰 교회입니까?

사람이 많은 교회입니까?

프로그램이 화려한 교회입니까?

물론 교회가 성장하고 여러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연약한 사람을 돌아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직분이 권력이 아니라 섬김의 책임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높임받으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4. 섬김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은

봉사하는 자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입니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입니까?

교회 안에서 영향력을 얻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섬길 때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칭찬이 우리의 최종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섬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드러나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선행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섬김은 자기 과시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배입니다.

결론: 섬김받으실 주님께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22장 27절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이 말씀은 단순히 겸손한 사람이 되라는 교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낮추셨다는 복음의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모든 피조물의 경배를 받으실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종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죄인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연약한 사람들을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헌신하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세 가지 결단을 하기 원합니다.

첫째, 높아지려는 교만을 내려놓읍시다.

세상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뜻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갑시다.

둘째, 우리를 섬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합시다.

우리의 구원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은혜입니다.

셋째,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이웃을 섬깁시다.

가정에서 섬기고, 교회에서 섬기며,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합시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세상에서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박수를 받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지하며 그분의 은혜 안에서 살아왔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열매로 하나님과 이웃을 얼마나 사랑하며 섬겼는지를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우리의 가정이 섬김의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교회가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섬김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섬김받으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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