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이르시되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마가복음 10장 49–50절, 개역개정
1. 주님께서 부르시는 순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는 모든 것이 막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외면당하고,
내일에 대한 희망마저 희미해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바디매오입니다.
그는 여리고 길가에 앉아 구걸하며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시각장애인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고,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바디매오 역시 자신의 힘만으로는 삶의 환경을 바꾸기 어려운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바디매오는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릅니다.
사람들은 그를 꾸짖으며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크게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부르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길가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바디매오처럼 주님을 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해결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기도하고, 가정과 자녀를 위해 눈물 흘리며,
마음의 아픔을 안고 주님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한 소망을 전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찾을 때, 주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부르실 때, 우리는 믿음으로 일어나 그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믿음을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주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본문 49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이르시되 그를 부르라.”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의 외침을 들으시고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이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길이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고, 주변은 소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길가에 앉아 있던 한 맹인이 예수님을 향해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은 그를 꾸짖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귀찮았을 수도 있고,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바디매오를 귀찮은 존재로 여겼지만,
예수님은 그를 만나 주실 분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예수님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합니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사람을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혹시 여러분도 바디매오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아무리 사정을 이야기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으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정의 문제로 힘들어도 혼자 견뎌야 하고,
자녀의 문제로 마음이 아파도 부모라는 이유로 강한 척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웃으며 인사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깊은 한숨을 내쉬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여러분의 형편을 다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조차 여러분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아십니다.
시편 34편 18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상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눈물을 아시며, 우리의 탄식을 들으십니다.
물론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방식으로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바디매오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은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신 순간이었습니다.
그가 부르짖던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형제자매 여러분,
기도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상황이 어렵다고 주님께 나아가는 일을 멈추지 마십시오.
응답이 더딜수록 더욱 주님을 찾으십시오.
마음이 무너질수록 더욱 주님께 여러분의 사정을 아뢰십시오.
우리의 기도는 허공으로 사라지는 소리가 아닙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주님을 신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두려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본문 49절 후반부를 보면 예수님께서 바디매오를 부르라고 하시자 사람들이 그에게 말합니다.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바디매오를 꾸짖었습니다.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말합니다.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바디매오에게 이 말은 단순한 전달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안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어나야 합니다.
여기서 안심하라는 말은 모든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두 알고 있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문제의 크기가 작아서가 아니라, 나를 부르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지금 기도하는 문제가 언제 해결될지 알지 못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길로 인도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두려워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의 꾸짖음에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부르시는 예수님께 집중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말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너는 안 될 거야.”
“이제는 늦었어.”
“아무리 기도해도 달라지는 게 없잖아.”
이러한 말들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 더 큰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너무 부족해.”
“나는 실패했어.”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과거만 보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실패만으로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초대하십니다.
주님께서 부르실 때 필요한 것은 모든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남아 있더라도 주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기도를 다시 시작하십시오. 무너진 믿음을 다시 세우십시오.
미루어 왔던 순종을 시작하십시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으로 돌아오십시오.
두려움이 없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르시기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다시 일어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 믿음으로 일어나 과거의 자리에 머물지 마십시오
본문 50절은 바디매오의 행동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이 구절에는 바디매오의 믿음을 보여 주는 세 가지 행동이 나타납니다.
-
겉옷을 내버렸습니다.
-
뛰어 일어났습니다.
-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이 세 가지 행동을 통해 우리는 믿음의 실제적인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겉옷을 내버렸습니다
당시 바디매오에게 겉옷은 단순한 옷이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겉옷은 밤의 추위를 견디게 해 주는 중요한 생활용품이었습니다.
구걸하던 그에게는 자신의 소유 가운데 매우 귀한 물건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말을 듣자 그는 겉옷을 내버리고 일어났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예수님께 나아가고 싶어 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길가에 앉아 있던 사람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부르시는 예수님께 나아가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여기서 겉옷을 내버린 행동을 무조건 재산이나 소유물을 버려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일을 다른 것보다 우선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도 내려놓아야 할 겉옷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가 겉옷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겉옷이 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교만과 고집이 겉옷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실패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못합니다.
“나는 예전에 실패했으니 이번에도 안 될 거야.”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닫습니다.
“나는 다시는 누구도 믿지 않을 거야.”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고집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내 생각이 맞으니 내 방식대로 해야 해.”
그러나 주님께서 부르실 때 우리는 이러한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과거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처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과거의 실패와 상처가 오늘의 순종을 가로막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십시오.
주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시는데 여전히 미움을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시는데 염려만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 다시 시작하라고 하시는데 과거의 실패 속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주님 앞에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으십시오.
믿음은 주님을 붙드는 동시에, 주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을 내려놓는 결단입니다.
2) 뛰어 일어났습니다
본문은 바디매오가 천천히 일어났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갔다고 말씀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가 모든 두려움과 고민을 완전히 극복했다는 뜻이라기보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반응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는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순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셨다면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화해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기도를 회복해야 한다면 오늘 시작해야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다면 가능한 방법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결정을 서두르라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일을 분별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 일이라면 불필요한 미룸을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기도하겠습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섬기겠습니다.”
“마음이 완전히 준비되면 순종하겠습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준비된 날만 기다리다 보면 평생 시작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순종을 오늘 실천하십시오.
짧은 기도라도 시작하십시오.
작은 사랑이라도 표현하십시오. 말씀 앞에서 깨달은 것을 한 가지라도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믿음은 마음속의 결심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3)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바디매오가 겉옷을 내버리고 일어난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부르시는 분께 나아갔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경 지식을 많이 쌓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과 삶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의 뜻을 배우고,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며,
사랑과 섬김으로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합니다.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주님과 멀어졌다고 느끼십니까?
기도가 형식적으로 변했습니까? 예배를 드리지만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까?
사람을 향한 미움과 판단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다시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주님께서는 완벽한 사람만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도 나아오라고 초대하십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오늘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5. 주님의 부르심은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바디매오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맹인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간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10장 51절에서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물으십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말씀하시며 그를 고쳐 주십니다.
이어지는 52절은 바디매오가 곧 보게 되어 예수님을 길에서 따랐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입니다.
그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모든 문제가 즉시 해결된다는 약속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신 특별한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일은 단지 어려운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의 인정만을 구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실패와 상처에 묶여 있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로운 걸음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의 회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용서와 화해의 결단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새로운 삶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나아갔고, 이후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우리도 은혜를 경험하는 데서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받은 은혜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경험했다면 다른 사람을 위로해야 합니다.
용서받은 은혜를 경험했다면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받은 은혜를 경험했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우리를 단지 위로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 새로운 길로 초대합니다.
오늘도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따르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6. 이제 일어나 주님께 나아갑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본문에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세 가지 중요한 장면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멈추셨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셨고, 사람들은 그에게 안심하고 일어나라고 전했습니다.
셋째, 바디매오는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믿음의 결단을 요청합니다.
혹시 지금 인생의 길가에 주저앉아 있는 것처럼 느끼십니까?
기도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 같고, 현실의 벽이 너무 높으며,
다시 일어설 용기가 없으십니까?
오늘 바디매오의 이야기를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이 그를 꾸짖었지만 예수님은 그를 부르셨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예수님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가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평가가 여러분의 가치를 결정하도록 하지 마십시오.
두려움이 주님께 나아가는 발걸음을 막도록 두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부르실 때 일어나십시오.
기도를 다시 시작하십시오. 말씀 앞으로 돌아오십시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용서해야 할 일이 있다면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용서의 길을 걸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시 붙드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보다 크신 주님, 우리의 두려움보다 신실하신 주님,
우리의 과거보다 새로운 미래를 열어 주실 수 있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오늘 우리의 입술로 이렇게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를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두려움에 머물지 않겠습니다.
과거의 실패에 묶여 있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며 일어나 주님께 나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따라 새로운 믿음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주님께서 부르실 때 일어나 나아가는 믿음, 주님을 만난 후 끝까지 따르는 믿음이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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