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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준목의 설교연습

위선적인 신앙인이 될까봐 두렵습니다.

by 초보 준목 슬완빠(papa is ok) 2026.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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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마태복음 23장 13절은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위선)을 강하게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종교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신앙을 요구하지만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않는 신앙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1. 마태복음 23:13의 말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13)

 

여기서 예수님은 매우 강한 표현인 “화 있을진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욕설이나 저주라기보다는,

“너희에게 심각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너희의 현재 상태를 돌이켜라.”라는

경고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이 말씀의 전체적인 맥락

마태복음 23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책망하신 장면입니다.

 

특히 23장 1~12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문제를 먼저 설명하십니다.

그들은 말은 잘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마 23:3 )

 

즉,

성경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모두 잘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가르치는 것과 실제 삶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종교적 의무를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그것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마 23:5 )

 

따라서 13절의 책망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닙니다.

말과 삶이 다른 신앙 →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 → 다른 사람의 구원을 가로막는 신앙이라는

흐름 속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3. “화 있을진저”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반복해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그들을 단순히 “나쁜 사람”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외식하는 자”라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외식’은 겉과 속이 다른 상태입니다.

즉,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마음의 중심은 하나님에게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3장의 핵심 문제는 단순한 도덕적 실수가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이 왜곡된 것입니다.

4. “천국 문을 닫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13절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입니다.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이것은 매우 심각한 말씀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가르쳐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위선적인 신앙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신들의 종교적 행위와 율법 준수를 강조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에게 이런 신앙을 가르치는 셈입니다.

“이것을 지켜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복음은 인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5.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라는 말

더 무서운 부분입니다.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잘못 인도하기 전에 자신들도 하나님 앞에 올바른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였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율법도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도 했습니다.

금식도 했습니다.

십일조도 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매우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신앙의 교훈을 얻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는 것과 구원받았다는 것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는 것과 하나님을 안다는 것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종교적인 열심과 참된 믿음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6.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즉, 자신의 잘못된 신앙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책임과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6에서도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에 대해

매우 엄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신앙을 가르치는 사람은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목회자, 장로, 교사, 부모,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7.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

이 말씀을 단순히

“바리새인은 나쁜 사람이고 우리는 그렇지 않다.”라고 읽으면 안 됩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는 어떠한가?”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기도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나는 기도하지 않는가?

나는 다른 사람에게

“용서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나는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가?

나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는 냉정하지 않은가?

나는 다른 사람에게

“교회에 충성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내 마음에는 하나님보다 명예와 인정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닌가?

 

이것이 마태복음 23장의 무서운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만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8. 예수님이 가장 문제 삼으신 것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23장을 계속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지적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① 겉과 속이 다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 마 23:28

 

② 사람에게 보이려는 신앙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 마 23:5

 

③ 높은 자리를 좋아함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
— 마 23:6

 

④ 다른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움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 마 23:4

 

⑤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림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 마 23:23

 

따라서 예수님이 비판하신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율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린 신앙입니다.

 

9. 마태복음 23:13의 핵심은 “위선”보다 더 깊다

이 말씀을 한 단계 더 깊이 보면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종교가 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의 인정에 대한 욕망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 마 6:1

기도할 때도,

금식할 때도,

구제할 때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참된 신앙과 외식의 차이는 상당 부분 “누구를 바라보느냐”에 있습니다.

10. 오늘날 교회에 적용한다면

마태복음 23:13은 오늘날 교회에도 매우 강력한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① 교회가 사람을 예수님보다 앞세울 때

교회의 직분, 조직, 전통, 프로그램, 인간관계가 복음보다 중요해지는 경우입니다.

 

② 행위를 복음보다 앞세울 때

“이것을 해야 하나님께 인정받는다”는 식으로 사람을 지나치게 정죄할 때입니다.

 

③ 지도자의 삶이 가르침과 다를 때

말로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미움과 분열을 조장한다면

사람들에게 복음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닫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④ 교회가 상처받은 사람을 정죄할 때

죄인을 회복시키기보다 먼저 정죄하고 배척한다면 그 사람은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기보다 예수님에게서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⑤ 교회가 예수님보다 교회 자체를 강조할 때

“우리 교회에 나오라”는 말은 많은데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라”는 복음이 약해진다면 이것 역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11. 그러나 이 말씀을 “교회에 가지 말라”는 말씀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23장의 대상은 교회 자체가 아니라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폐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참된 공동체를 원하셨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 위선이 있다고 해서

“교회는 다 위선적이다.”라고 결론내리는 것도 올바른 적용은 아닙니다.

오히려 질문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교회를 만들고 있는가?”

그리고

“내 삶 때문에 누군가가 예수님께 가까이 가고 있는가, 아니면 멀어지고 있는가?”입니다.

 

12. 마태복음 23:13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이 말씀을 자신의 신앙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나는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만큼 나 자신도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둘째, 나는 하나님께 인정받기보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신앙생활하고 있지는 않은가?

셋째, 나의 말과 행동은 일치하는가?

넷째, 나 때문에 누군가가 예수님께 가까워지고 있는가, 멀어지고 있는가?

다섯째, 나는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실제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여섯째, 나는 다른 사람의 죄에는 엄격하면서 자신의 죄에는 관대한가?

 

13. 정리하면

마태복음 23장 13절은 단순히 “바리새인이 나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자신의 삶으로 다른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신앙은

가장 위험한 신앙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너의 신앙은 사람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 주고 있는가, 아니면 닫고 있는가?”

 

특히 마태복음 23장 전체를 보면 13절부터 36절까지의 ‘일곱 가지 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어떤 죄를 가장 심각하게 보셨는지,

그리고 이것을 오늘날 한국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까지 매우 깊이 연결해서 볼 수 있습니다.

 

14. 나의 기도문

현재 신학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제 자신도 이러한 바리새인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로 하루 하루 소중한 인생을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인도로 인해 신학대학원을 등록하게 하시고 

주님을 조금 더 알수 있게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종이 되기위해 부족한 저를 연단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마태복음 23장 13절의 말씀처럼
사람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 주기는커녕
내가 먼저 들어가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목회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말씀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말씀 앞에 서게 하시고,
성도에게 순종을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순종하게 하시며,
사람의 인정과 칭찬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두려워하게 하옵소서.

 

강단에서는 거룩을 말하면서 삶에서는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겉모습의 경건보다 마음의 진실함을 지키게 하옵소서.

목회자의 권위보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하시고,
사람을 지배하는 목자가 아니라
상한 영혼을 섬기고 사랑하는 목자가 되게 하옵소서.

 

평생 말씀 앞에서 자신을 먼저 돌아보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목회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제가 바리새인이 되지 않게 하시고
복음의 문을 열어 주는 목회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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