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보 준목의 설교연습

신앙생활을 10년, 20년 했는데도 왜 구원의 확신이 없을까?

by 초보 준목 슬완빠(papa is ok) 2026. 10. 3.
반응형

 

“교회에 다닌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예배도 빠지지 않으려고 했고, 봉사도 했습니다.”

“성경도 많이 읽었고 기도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나는 정말 구원받은 사람일까?”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교회를 처음 다니는 사람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 가운데서도 이런 질문을 깊이 고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삶이 힘들어지고, 반복해서 죄를 짓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이런 의문은 더욱 커집니다.

 

“나는 왜 믿음이 이 정도밖에 안 될까?”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일까?”

“혹시 나는 교회만 오래 다닌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피해야 할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 번쯤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1. 교회에 오래 다닌 것과 구원의 확신은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생활의 기간을 믿음의 정도와 연결합니다.

“나는 20년 동안 교회에 다녔으니까 믿음이 좋겠지.”

하지만 성경은 단순히 교회에 얼마나 오래 다녔는가를 구원의 기준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닐 수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할 수도 있습니다.

직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 지식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곧바로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매우 엄숙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사람인가, 아니면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인가?

신앙생활의 연수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나의 관계입니다.

 

2. 구원의 확신이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나’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때 우리는 자꾸 자신을 바라봅니다.

“내가 요즘 기도를 잘하고 있는가?”

“성경을 충분히 읽고 있는가?”

“죄를 너무 많이 짓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믿음이 충분히 강한가?”

“내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가?”

물론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구원의 근거를 나에게서 찾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내 감정은 변합니다.

내 믿음도 흔들립니다.

내 결심도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어제는 기도가 잘되었는데 오늘은 기도가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제는 하나님이 가까이 느껴졌는데 오늘은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근거를 나의 상태에 두는 순간 확신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의 시선을 나 자신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립니다.

3. 구원의 근거는 내가 얼마나 잘 믿느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

구원의 확신을 생각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원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그리고 이어서 말씀합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여기에는 복음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구원의 근거가 나의 행위에 있다면 우리는 평생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내가 충분히 잘했는가?”

“오늘 죄를 짓지는 않았는가?”

“오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가?”

그러나 구원의 근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넘어집니다.

나는 때때로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나는 같은 죄 앞에서 다시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구원의 소망은 나의 완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습니다.

4. “나는 죄를 짓는데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가?”

이 질문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잃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10년이나 믿었는데 왜 아직도 이런 죄를 짓지?”

“나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이런 사람이 정말 구원받은 사람일까?”

 

여기에서 우리가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도에게도 죄와의 싸움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 되었느냐가 아니라, 죄를 어떻게 대하느냐입니다.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고 사랑하며 하나님께 돌아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과,

죄를 지었을 때 마음 아파하며 하나님께 회개하고 다시 돌아가는 것은 다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성도의 삶에는 넘어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 다시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합니다.

 

5.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 삶이 크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또 하나의 고민이 있습니다.

“나는 교회에 다닌 지 20년이 되었는데 왜 내 성격은 그대로일까?”

“왜 나는 아직도 화를 잘 낼까?”

“왜 욕심이 줄어들지 않을까?”

“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까?”

이런 고민 때문에

“나는 구원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성장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화는 긴 과정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변화가 크게 느껴질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변화가 아주 천천히 나타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예전에는 죄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죄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예전에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예전에는 자기 뜻만 주장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잘못만 보였는데 이제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가 있다면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작은 변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일하시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6.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구원의 확신은 더욱 흔들린다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 자신이 부족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저 사람은 기도를 정말 잘하는데 나는 왜 기도가 안 될까?”

“저 사람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아는데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네.”

“저 사람은 항상 기뻐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나의 내면의 모습을 비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신앙을 겉으로만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신앙을 기준으로 나의 구원을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기준은 다른 성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7. 구원의 확신을 점검하는 질문

그렇다면 나는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지 어떻게 돌아볼 수 있을까요?

다음 질문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

단순히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 나는 나의 의가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있는가?

“나는 교회생활을 열심히 했으니까 구원받았다.”가 아니라

“나는 부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한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가, 하나님께 돌아가는가?

죄를 지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죄를 대하는 태도일 수 있습니다.

죄를 숨기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는가를 돌아보십시오.

 

넷째,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싶은가?

완벽하게 순종하고 있느냐만을 보지 마십시오.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를 살펴보십시오.

 

다섯째, 내 삶에 작은 변화라도 나타나고 있는가?

완벽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를 돌아보십시오.

8. 구원의 확신은 ‘느낌’보다 ‘약속’을 붙드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크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가까이 느껴진다고 구원받은 것이고,

내일 하나님이 멀리 느껴진다고 구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은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나 자신을 바라보기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9. 혹시 나는 ‘교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예수님’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오히려 이 질문이 필요합니다.

나는 예배에 익숙해졌지만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성경 지식은 많아졌지만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나는 교회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성도로 보이고 싶은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성도가 되고 싶은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가?

이 질문들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다시 복음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질문입니다.

 

10.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때 다시 십자가를 바라보라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때 우리는 자신을 더 열심히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앞으로 기도를 더 많이 해야겠다.”

“성경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

“죄를 절대로 짓지 말아야겠다.”

물론 기도와 말씀과 거룩한 삶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다시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는가보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바라보십시오.

내 믿음이 얼마나 강한가보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크신가를 바라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완벽한가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 얼마나 완전한가를 바라보십시오.

 

결론 : 20년을 믿었는데도 확신이 없다면

신앙생활을 10년, 20년 했는데도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무조건 이렇게 결론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구원받지 못했구나.”

그러나 반대로

“나는 교회에 오래 다녔으니까 당연히 구원받았겠지.”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앙을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자주 넘어집니다.

나는 때때로 의심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구원의 근거는 나 자신이 아닙니다.

나의 구원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얼마나 잘 믿고 있는지를 바라보기보다
저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해주십시오.”

신앙의 마지막 질문은

“나는 충분히 좋은 신자인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이것이 더 중요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내가 나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약속 안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면,

자신을 바라보는 일을 잠시 멈추고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했는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신 일을 다시 바라보십시오.

그곳에서 다시 복음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