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나는 정말 구원받았는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왜 확신이 없을까?”라는 질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에 다닌 기간과 구원의 확신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래 믿었다는 사실 자체가 확신을 보장하지도 않고, 반대로 확신이 흔들린다고 해서
반드시 구원받지 못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1. 신앙의 기준을 ‘내 감정’에 두기 때문입니다
어떤 날은 하나님이 가까이 느껴지고 기도가 잘됩니다.
그러나 어떤 날은 아무런 감정도 없고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때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는다 → 하나님이 나를 떠나셨다
→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감정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항상 하나님을 강하게 느낀다는 뜻이 아니라,
느낌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 고린도후서 5:7 )
2. 자신의 죄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흔들립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데 왜 또 같은 죄를 짓는가?”
이 질문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괴로워합니다.
특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죄에 더욱 민감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구별이 있습니다.
죄를 짓는 것과 죄를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성도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었을 때 마음이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괴로워하고 회개하게 됩니다.
요한일서 1:9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그러므로
“나는 죄를 지었다” → “나는 구원받지 못했다”라고 바로 결론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가려는 마음 자체가 중요합니다.
3.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근거’를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믿음이 강하면 구원받은 것이고, 믿음이 약하면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근거는 나의 믿음의 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내가 오늘 믿음이 강하다고 해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더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일 믿음이 약해졌다고 해서 예수님의 구속이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은 결국
“내가 얼마나 잘 믿고 있는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로 시선을 옮기는 데서 시작됩니다.
4. 신앙생활을 오래 했지만 ‘복음’을 다시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면 성경 지식은 많아집니다.
예배도 드리고, 찬송도 하고, 기도도 하고, 봉사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놓칠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복음의 핵심은 내가 얼마나 착하게 사느냐가 아닙니다.
죄인인 인간이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9은 이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오래 했더라도 다시 복음 앞에 서야 합니다.
5. 다른 성도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다른 사람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기도를 정말 잘하는데 나는 왜 이럴까?”
“저 사람은 성경을 많이 아는데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저 사람은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나는 항상 흔들린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과 나의 신앙생활을 비교하면 확신이 아니라 열등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신앙의 기준은 다른 성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6. 신앙을 ‘교회생활’과 동일시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배 참석, 봉사, 헌금, 성경공부, 직분 등은 중요하지만 그것 자체가 구원의 근거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장에서 매우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이 말씀은 교회 활동을 많이 하는 것과 참된 신앙은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오래 했을수록 오히려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인가, 아니면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인가?”
7. 하나님을 ‘나의 필요를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응답되면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것 같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실 것이다.”라는 믿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나는 여전히 주님을 신뢰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욥의 고백이 대표적입니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 욥기 13:15 )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신앙입니다.
8. ‘확신이 흔들리는 것’ 자체를 믿음의 실패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에게도 질문과 의심의 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도 끊임없이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중요한 것은 의심이 생겼느냐가 아니라 그 의심을 가지고 어디로 가느냐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질문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으로 돌아가고,
다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확신은 어떻게 점검할 수 있을까요?
자신에게 다음 질문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①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있는가?
단순히 “기독교가 맞다고 생각한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② 나는 나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고 있는가?
“나는 교회생활을 잘했으니까…”가 아니라
“나는 부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③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에게서 숨는가, 하나님께 돌아가는가?
죄가 없는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죄를 깨달았을 때 그리스도께 돌아가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④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완벽한 순종이 아니라 순종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⑤ 내 삶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가?
구원받은 사람은 하루아침에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죄에 대한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 용서, 사랑, 교만, 욕심, 하나님을 향한 마음등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
결국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 수 있습니다.
“나는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가?”
그리고 또 하나입니다.
“나는 내가 잘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가?”
신앙의 확신은 자기 자신을 바라볼수록 흔들리고, 그리스도를 바라볼수록 견고해집니다.
그래서 확신이 흔들릴 때는 자신의 감정과 행위를 계속 들여다보기보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자주 넘어졌다. 그러나 나의 구원의 소망은 나 자신에게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이것이 구원의 확신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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