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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준목의 설교연습

“나는 날마다 죽노라”

by 초보 준목 슬완빠(papa is ok) 2026.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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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고린도전서 15장 31절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죽음”은 매일 육체적으로 죽는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1. 핵심은 “부활”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거의 전체가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복음을 설명하면서,

자신도 그 부활을 믿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서 고난과 위험을 감수하고 복음을 전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매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즉, 바울에게 복음 전파는 편안한 종교생활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의 안전과 편안함을 매일 포기하는 삶이었습니다.

2.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죽이는 것입니다

바울의 삶을 쉽게 표현하면 이런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보다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편안하게 살고 싶지만 → 복음을 위해 고난을 감수하고

인정받고 싶지만 →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낮추고

안전하고 싶지만 →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내 뜻대로 살고 싶지만 →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

이런 삶을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욕심을 버리자” 정도의 자기수양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삶의 중심에 놓지 않고 그리스도를 중심에 놓는 것입니다.

3. 갈라디아서 2:20과 연결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 말씀과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표현은 서로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중심인 삶

내가 원하는 것 → 내가 결정 → 내가 영광을 받음

 

그리스도가 중심인 삶

그리스도의 뜻 → 그 뜻에 순종 → 그리스도께 영광

 

따라서 “죽는다”는 것은 자아라는 존재를 없애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려는 태도를 내려놓는 것에 가깝습니다.

4. 그런데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매일 나를 미워하고 나 자신을 학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서 자기 부인은 자기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중요하지 않다”가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다.” 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부인과 자기비하는 구별해야 합니다.

5. 그렇다면 오늘날 “날마다 죽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주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내 안에서는

“나도 똑같이 갚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때 예수님의 말씀을 선택한다면,

“내 감정과 자존심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반응하겠다.”라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또 내 욕심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만 묻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라면 내가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매일 한 번씩 특별한 종교의식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여러 순간마다

‘내가 주인인가, 그리스도가 주인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 마태복음 7:21의 말씀과 연결 

예수님께서는

“주여 주여”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실제 삶에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즉,

입술로 “예수님은 주님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실제 삶에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므로 내 뜻보다 그분의 뜻을 따르겠습니다”라고 살아가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은 단순히 고난을 자랑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매일 나 자신을 주인 자리에 앉히지 않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삶을 선택한다.”라는

신앙고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의 문맥에서는 이 모든 희생이 부활의 소망과 연결됩니다.

바울이 현재의 고난을 감수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은 ‘나를 없애겠다’는 뜻이 아니라,

매일 나의 욕심과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선택하며,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겠다는 바울의 고백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면

“날마다 죽는 삶” = 나를 괴롭히는 삶이 아닙니다.

“날마다 죽는 삶” = 예수님 때문에 내가 더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부인은

“나는 아무 가치가 없다.”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이지만,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앞에서 이야기했던 “주여 주여”라는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입으로만

“예수님이 나의 주님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선택해야 하는 아주 작은 순간에 실제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날마다 죽는 삶”을 살아가는 아주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주님, 지금 제 감정이 주인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말고 주님의 뜻대로 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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