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보 준목의 설교연습

중심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by 초보 준목 슬완빠(papa is ok) 2026. 9. 22.
반응형

오늘의 말씀

요한일서 1:12:2, 2:36, 3:1824, 4:716, 5:1113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질문 하나를 가지고 말씀 앞에 서려고 합니다.

 

내 신앙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하시겠습니까?

 

나는 열심히 기도합니다.”

나는 교회에서 봉사합니다.”

나는 말씀을 읽습니다.”

나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성령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귀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기도가 중심입니까?

봉사가 중심입니까?

순종이 중심입니까?

사랑이 중심입니까?

성령의 체험이 중심입니까?

아니면 나의 감정이 중심입니까?

 

요한일서를 읽어보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어떤 행동도, 어떤 경험도, 어떤 감정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말씀드리면 이것입니다.

중심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순종이 중심이 되면 율법주의가 됩니다.

사랑이 중심이 되면 도덕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체험이 중심이 되면 주관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기 감정이 중심이 되면 신앙이 불안정해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면 순종·사랑·회개·성령의 역사가 모두 제자리를 찾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신앙의 중심이 순종이 되면 율법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는 순종을 매우 중요하게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23절입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얼핏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사람은 계명을 잘 지켜야 하는구나.”

맞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순종을 구원의 근거로 만들어 버리면 문제가 생깁니다.

나는 교회에 열심히 나갑니다.”

나는 봉사를 많이 합니다.”

나는 십일조를 합니다.”

나는 새벽기도를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어옵니다.

나는 이렇게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율법주의가 시작됩니다.

순종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순종이 그리스도에게서 분리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순종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순종합니까?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았기 때문입니까?

이 차이는 굉장히 큽니다.

 

율법주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순종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야 합니다.”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내가 순종합니다.”

순서가 완전히 다릅니다.

 

요한일서 419절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신앙의 출발점은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내 순종이 먼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제가 잘했으니까 사랑해 주세요.”가 아닙니다.

“주님, 저 같은 죄인을 먼저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셨으니 이제 제가 주님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이것이 복음적인 순종입니다.

 

2. 신앙의 중심이 사랑이 되면 도덕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가장 많이 강조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47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8절은 더 강하게 말씀합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러므로 사랑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사랑을 그리스도에게서 분리하면도덕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세상에서도 사랑을 말합니다.

서로 존중하라고 합니다.

서로 배려하라고 합니다.

용서하라고 합니다.

약자를 돌보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사랑은 단순한 인간적인 선행과 다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전에 사랑받았습니다

요한일서 410절을 보십시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절정이 어디에 나타났습니까?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사랑은

착하게 삽시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사랑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3. 사랑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사랑조차 자기 의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 아주 무서운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하면서도 자기 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사랑이 많아.”

나는 저 사람보다 헌신적이야.”

나는 다른 교회보다 우리 교회가 더 사랑이 많아.”

이렇게 되면 사랑이 오히려 자랑의 근거가 됩니다.

 

사랑하면서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섬기면서 우월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구제하면서 자기 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복음적인 사랑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십자가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랑한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랑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열매가 맺혀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하게 됩니다.

 

4. 성령의 체험이 중심이 되면 주관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는 성령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413절입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성령은 중요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실제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중심이 바뀌면 문제가 생깁니다.

성령보다 성령의 체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나는 이런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이런 기도를 받았습니다.”

나는 이런 영적인 체험을 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은 소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 자체가 진리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5. 요한일서는 성령을 말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둡니다

요한일서 42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여기에서 중요한 원리가 나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그리스도가 중심이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역사가 진짜라면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죄를 더 미워하게 됩니다.

복음을 더 붙들게 됩니다.

형제를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영적인 경험을 했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는가?”입니다.

 

6. 자기 감정이 중심이 되면 신앙이 불안정해집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감정은 얼마나 자주 변합니까?

어제는 기도가 잘되었습니다.

오늘은 아무 느낌이 없습니다.

어제는 찬양하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오늘은 아무 감동도 없습니다.

어제는

주님이 정말 나와 함께 계신 것 같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계시는 걸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이 어제는 살아 계셨고 오늘은 사라지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입니다.

 

7. 구원의 확신은 감정이 아니라 복음에 기초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513절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요한은

너희가 오늘 얼마나 뜨거운 감정을 느끼는지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무엇을 근거로 합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의 확신은

오늘 기분이 좋으니까 나는 구원받은 것 같다.”가 아닙니다.

오늘 내가 기도에 은혜를 받았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 같다.”도 아닙니다.

 

우리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나는 그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구원도 그분 안에서 붙들립니다.”

이것이 복음적인 확신입니다.

 

8. 그러면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면 순종·사랑·회개·성령의 역사가 모두 제자리를 찾습니다.

하나씩 보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가 중심이면 순종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감사가 됩니다

해야 하기 때문에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받았기 때문에순종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순종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순종해야지.”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받았으니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습니다.”가 됩니다.

 

둘째, 그리스도가 중심이면 사랑은 자기 의가 아니라 은혜의 열매가 됩니다

내가 사랑을 많이 했다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먼저 사랑받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용서했다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나도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품었다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나 역시 그리스도께 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깊이 아는 사람은 사랑하면서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셋째, 그리스도가 중심이면 회개는 정죄가 아니라 은혜로 돌아가는 길이 됩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안 돼.”

나는 위선자야.”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을 거야.”

이렇게 절망하는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21절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나님에게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말하십시오.

“주님,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의 대언자가 되십니다. 다시 주님께 돌아갑니다.”

이것이 복음적인 회개입니다.

9. 그리스도가 중심이면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를 더 선명하게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내가 대단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더 커집니다.

내 경험이 자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자랑이 됩니다.

내 능력이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나는 굉장한 경험을 했다.”가 아니라

“예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더 알게 되었다.”입니다.

 

10. 이것이 바로 요한일서 전체의 구조입니다

요한일서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1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생명의 말씀

2장에서는 예수님을 대언자라고 말합니다.

4장에서는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리고 5장에서는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모든 것이 결국 어디로 돌아갑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를 읽으면서

나는 순종해야 한다.”만 기억하면 부족합니다.

나는 사랑해야 한다.”만 기억해도 부족합니다.

나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만 기억해도 부족합니다.

나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만 기억해도 부족합니다.

이 모든 말씀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11. 신앙생활이 힘든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쩌면 우리가 너무 자주

그리스도보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믿음이 없지?”

나는 왜 이렇게 사랑하지 못하지?”

나는 왜 자꾸 넘어지지?”

나는 왜 기도가 안 되지?”

나는 왜 성령의 은혜를 못 느끼지?”

물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 바라보면 결국 절망합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의 시선을 바꿉니다.

나를 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보라고 합니다.

내가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보지 말고

내가 누구를 믿고 있는지를 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만 보지 말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순종했는지만 보지 말고

나를 위해 얼마나 순종하셨는지를 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깨끗한지만 보지 말고

나를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보십시오.

 

12. 십자가를 바라볼 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거기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나의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나의 실패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순종하신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나의 수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의롭게 하시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나의 죽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는

율법주의가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내가 구원받은 것이 내 공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덕주의가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받은 것이 내 선함 때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관주의가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나의 체험보다 객관적인 십자가가 더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주의가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나의 감정이 변해도 십자가의 은혜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3.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봅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네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나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합니까, 아니면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순종합니까?

 

두 번째 질문입니다.

나는 사랑을 통해 나의 의를 드러내려고 합니까, 아니면 십자가에서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고 있습니까?

 

세 번째 질문입니다.

나는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회개합니까?

 

네 번째 질문입니다.

나는 나의 영적 체험과 감정을 중심에 놓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놓고 있습니까?

 

이 네 질문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을 다시 예수님께 돌리기 위한 질문입니다.

 

14. 여러분의 신앙 중심을 점검하십시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신앙 중심에

순종이 있다면,

그 순종을 그리스도께 돌려드리십시오.

“주님, 제가 잘해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았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혹시 중심에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의 근원을 십자가로 돌려보내십시오.

“주님, 제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혹시 중심에

성령의 체험이 있다면,

그 체험을 그리스도께로 가져가십시오.

“주님, 이 경험을 통해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혹시 중심에

감정이 있다면,

감정에서 약속으로 돌아오십시오.

“오늘 내가 무엇을 느끼느냐보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붙들겠습니다.”

 

15. 중심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신앙이 달라집니다

그리스도가 중심에 계시면

순종이 의무에서 감사로 바뀝니다.

회개가 두려움에서 은혜로 돌아가는 길이 됩니다.

사랑이 자기 자랑에서 은혜의 열매가 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자기 과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도 달라집니다.

내가 잘하고 있으니까 구원받았을 거야.”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나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하십니다.”

나는 자주 넘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의 대언자이십니다.”

나는 사랑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나는 내 감정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입니다.

 

맺는말 다시 중심으로 돌아갑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처음에는 예수님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예수님 주변에 여러 가지가 많이 붙습니다.

기도도 중요합니다.

말씀도 중요합니다.

봉사도 중요합니다.

순종도 중요합니다.

사랑도 중요합니다.

성령의 역사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예수님을 대신하면 안 됩니다.

 

좋은 것들이 예수님을 밀어내는 순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중심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순종이 중심이 되면 율법주의가 됩니다.

사랑이 중심이 되면 도덕주의가 됩니다.

성령의 체험이 중심이 되면 주관주의가 됩니다.

자기 감정이 중심이 되면 불안정한 신앙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면

순종은 감사가 되고,

사랑은 은혜의 열매가 되고,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이 되고,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도 다시 제자리를 찾습니다.

 

요한일서 511절과 12절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그리고,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 중심을 다시 예수님께 돌려드립시다.

주님, 나의 순종보다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나의 사랑보다 나를 사랑하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나의 체험보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게 하소서.”

나의 감정보다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소서.”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시다.

예수님, 주님이 나의 중심입니다.”

나의 의도 주님이고, 나의 생명도 주님이며, 나의 구원도 주님입니다.”

“내가 잘해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붙드셨기 때문에 주님께 나아갑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신앙을 다시 중심으로 가져갑시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중심이 되면

순종도,

사랑도,

회개도,

성령의 역사도,

구원의 확신도

모두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라는 복음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평생 붙들어야 할 신앙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심입니다.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