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요한일서 2:3–6, 3:4–10, 5:18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지난 시간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점검하는 첫 번째 질문을 살펴보았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있는가?”
오늘은 두 번째 질문입니다.
“나는 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 질문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까?”
요한일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한은 1장 8절에서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도 죄를 짓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릅니까?
죄가 있느냐 없느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죄를 대하는 방향이 달라졌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1. 구원받은 사람도 죄를 짓습니다
요한일서 2장 1절을 보십시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요한은 성도들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확신은 어디에서 옵니까?
죄를 지었을 때
“나는 끝났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대언자가 계신다”라고 복음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대언자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렇다면 죄를 계속 사랑해도 괜찮다는 뜻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3장 6절은 매우 강하게 말씀합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단 한 번도 짓지 않는다”라고 이해하면 요한일서 1장 8절과 충돌합니다.
따라서 요한이 강조하는 것은 죄 없는 완전함이 아니라
죄를 지속적으로 사랑하고 죄 가운데 머무르려는 삶의 방향입니다.
참된 신앙에는 죄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죄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니까 죄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예전에는 죄를 숨기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내가 왜 잘못했어?”라고 변명했다면,
이제는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변화입니다.
3. 구원받은 사람에게 죄에 대한 싸움이 있습니다
성도의 삶에는 싸움이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싸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미워하는 싸움이 있습니다.
죄를 합리화하지 않는 싸움이 있습니다.
죄를 숨기지 않는 싸움이 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 돌아오는 싸움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계속 같은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제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반복되는 죄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그 죄를 사랑합니까, 아니면 그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괴로워합니까?”
죄와 싸우다가 넘어질 수 있습니다.
다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이제 하나님과 상관없어.”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곳에서 우리는 복음을 발견합니다.
4. 죄를 이기는 힘은 자기 의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요한일서 2장 1절은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한 뒤 곧바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보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작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죄가 깊어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더 깊습니다.
우리의 실패가 반복되어도 그리스도의 중보가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거룩함은
“나는 이제 죄를 안 짓는다.”라는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죄와 싸우지만 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라는 복음의 확신입니다.
5. 그러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점검해야 합니까?
첫째, 나는 죄를 죄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둘째, 나는 죄를 숨기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습니까?
셋째, 나는 죄를 즐기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넷째,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에게서 도망갑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돌아갑니까?
다섯째, 내 안에 거룩해지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까?
여러분,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죄를 지었을 때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죄를 사랑하던 사람이 죄를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던 사람이 주님의 뜻을 구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성화입니다.
맺는말
오늘 우리는 자신을 정죄하기 위해 이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질문하는 것입니다.
“나는 죄를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죄와 싸우고 있는가?”
혹시 오늘 넘어져 계십니까?
다시 십자가 앞으로 나오십시오.
혹시 반복되는 죄 때문에 낙심하고 계십니까?
회개하십시오.
그러나 동시에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구원은 여러분의 완벽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대언자가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나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죄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넘어질 때마다 그리스도께 돌아가겠습니다.”
이것이 요한일서가 보여주는 구원의 방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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